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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화학자 ⑦

서정헌(徐正憲) 서울대학교 교수(1948~)












서정헌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과



서정헌 교수는 대한민국 유기화학계를 이끈 거목 가운데 한 명으로, 재직하는 동안 첫 한국과학상(1987년 장려

상, 1994년 대상) 수상을 비롯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내 기초과학연구에 정부지원이 시작된 1980년 무렵에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한 연구 1세대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업적으로 아밀로이드성 단백질 관련 질병 치료를 위한 인공효소의 개발이 있는데, 이를 통해 투여량과 부작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촉매성 의약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 교수는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에 입학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학생운동으로 기억되는 격동

의 시기였고, 재학 중이던 4년 간 네번의 휴교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전공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었다고 한

다. 1971년 졸업 후 미국 시카고 대학의 Kaiser 교수 연구실에서 카복시펩티데이스 A(carboxypeptidase A, CPA) 촉매 반응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1975년), 노스웨스턴대학의 Klotz 교수연구실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폴리에틸렌 이민 고분자를 골격으로 하는 인공 효소에 대해 연구했다(1975-1977년). 서 교수는 김경태, 김하석, 주광렬, 이은, 김영식 교수와 함께 1977년에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부임했다. 당시 불모지와 다름없던 열악했던 국내 연구 환경은 교육부와 한국과학재단의 연구비 지급과 석사장교 제도를 통해 서서히 개선되었고, AID 차관사업으로 도입된 UV-Vis 분광계를 이용해서 다행히도 공백기 없이 인공 효소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서 교수는 당시 여건 상 적은 비용과 석사 과정 대학원생 위주의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발굴해야 했었

고, 이러한 제약 조건 속에서도 세계적인 연구실들과 경쟁하는 생유기화학 분야의 도전적인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 무렵 CPA 효소의 반응메커니즘은 Kaiser, Breslow, Lipscomb, Vallee 교수 등의 열띤 논쟁이 있던 주제였

다. 서 교수는 이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관점에서 메커니즘의 중요한 가설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질을 설계

하는 한편 다양한 모형 연구를 수행하고, 속도론적 결과를 분석해서 새로운 촉매 작용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이

와 관련된 논문 여러 편을 J. Am. Chem. Soc.에 게재한 것은 당시 한국의 열악한 연구 여건에서 대단한 일이었다.

1985년에 발표한 첫 번째 J. Am. Chem. Soc. 논문으로 화학 분야의 첫 한국과학상(장려상)을 수상하고(1987년), 후속 연구에서 발견한 금속 이온의 보편적 촉매작용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를 집대성한 1992년 Acc. Chem. Res. 논문으로 한국과학상(대상)을 받았다(1994년).

1990년대에 들어서 서 교수는 앞으로 인류가 직면하게 될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는데 연구를 집중하게 된다. 금속효소와 금속이온의 촉매작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하는 단백질의 특정 위치를 절단하는 인공 펩티데이스(artificialpeptidase)를 개발한 일련의 연구를 예로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구리(II)-사이클렌착화합물을 폴리스타이렌에 부착하면 펩타이드 가수분해 능력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J. Am. Chem. Soc. 1998, 120, 12008), 기질을 인식하는 작용기를 도입하여 절단 부위의 선택성이 있는 인공효소를 개발했다(J. Am. Chem. Soc. 2000, 122 , 7742; J. Am.Chem.Soc. 2003, 125, 14580; J. Am. Chem. Soc. 2005, 127, 9593). 이러한 기질 선택적인 인공 펩티데이스인는 용해성 아밀로이드 올리고머가 관여하는 알츠하이머병, 제2형 당뇨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광우병과 같은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또한, 항생제 개발의 주요 표적인 펩타이드디포밀레이즈(PDF)를 선택적으로 절단하는 인공효소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J. Am. Chem. Soc. 2005, 127, 2396).

여기서는 Ugi 반응을 적용하여 15,000여개의 라이브러리를 구성하는 전략을 통해 높은 선택성으로 PDF를 인

식해서 분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2005년 국가지정연구실사업 선정을 계기로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절단하여 녹여내는 촉매개발로 이어지게 된다(Angew. Chem., Int. Ed. 2007, 46, 7064).

서 교수는 서울대학교 재직 중 1987-1989년 연구부 처장을 맡았고, 1995년에는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을 겸

임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서울대학교에 선도연구센터(SRC)로 분자촉매연구센터를 유치하여 2004년까지

단장직을 수행했다. 1995년 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06년에는 영국화학회의 펠로우로 선임되었

다. 2005-2007년에는 아시아화학연맹(Federation of Asian Chemical Society, FACS)의 회장으로 재임하

면서 2005년에 국내에서 개최된 아시아화학학술대회(Asian Chemical Congress) 행사를 이끌었다. 또한

2011-2012년에는 한국유기합성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정헌 교수는 40여년 간 생유기화학분야의 연구를 하면서 180여편의 논문과 <효소반응속도론>, <생물유기화

학>을 저술하고, 118명의 석사와, 29명의 박사를 제자로 양성했다. 제자들은 학계(33명), 정부기관(12명), 산업계

(54명)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서 일하고 있다. 서 교수는 직관적인 비유로 화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즐겼

는데, 통찰이 담긴 일상의 언어로 복잡한 개념을 풀어주던 사례들은 지금도 제자들의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이

야깃거리이기도 하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쉬지않고 연구하는 참 된 학자였고,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스승이었다.

한국 유기화학계에 큰 획을 그은 연구가 중단되는 것을 아쉬워하는 많은 이들을 뒤로하고 2013년에 서울대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았으며, 이후에는 서강대학교 인공광합성연구센터에서 연구 자문을 하였고, 기초과학연

구원(IBS) 연구단의 선정, 평가, 심의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신학(神學)을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아, 2019년에는 화학의 관점에서 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담긴 <화학자가 본 가톨릭 신앙>을 저술했다.


참고자료

(1) 화학세계 2006, 1월호, 32-37

(2) ‘Forty Years with Bioorganic Chemistry’(서울대학교 정년기념 강연), 2013년 5월 글




한양대학교 화학과 교수 신승훈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 이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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