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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분석화학 연구 경험을 통해 본 ‘교육’과 ‘훈련’의 관계

이종혁 |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huak123@gmail.com

 

* 본 원고는 <이종혁. “기초군사훈련의 ‘교육’과 ‘훈련’에 관한 셀프 내러티브 : ‘훈련’ 개념 재고를 통한 화학 실험 경험의 재해석”. 교육문화연구, 2021. 27(6), 715–737.>의 일부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됨.


서 론


‘교육(education)’이라는 이름의 행위를 수행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더 나은 교육’에 대해 고민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학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은 ‘교육’ 이란 용어를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성장과 발달을 어떤 이상(理想)이나 목적, 혹은 가치기준에 의하여 통제하거나 조력(助力)하는 일련의 인위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대학 교수, 학교 교사, 학원 강사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육’ 직종에 종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선수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스포츠팀 감독과 코치, 기업 인사팀의 인재개발(Human Resource Devel- opment; HRD) 직종 종사자도 일종의 교육 행위를 수행 하고 있다. 비단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직장 동료나 또래 친구들과 협업할 때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교육으로 해석할 수 있 는 상호작용을 수시로 주고받는다.

또한, 사람과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직접 마주할 때만 교육이 성립하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책이나, 온라인 강의 영상 등의 형식을 통해서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육을 말한다. 더 나아가, 명시적인 가르침이나 능동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며 교수자가 학습자를 묵묵히 지켜보는 행위나, 스승의 가르침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제자에게 와닿는 모습도 교육으로 해석할 수 있다.『교육학 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은 교육의 이러한 폭 넓은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교육은 적어도 그것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사람이나 사회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그 의도는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간접적이고 암시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단기적이고 미시적(微視的)일 수도 있으며, 장기적이고 거시 적(巨視的)일 수도 있다.


이렇듯 교육이 실제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양상은 매우 다채로우면서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교육학자들은 ‘교육인 것’을 더 명료하게 개념화하고자 ‘교육이 아닌 것’과 대비해보는 방식의 접근을 취하곤 한다. 예컨대 교육을 ‘사회화(socialization)’와  대비하여,  사회화가  사회체제의 재생산에 중점을 두는 목표지향적 특징을 갖는 데 반해, 교육은 더 나은 인간의 형성과 사회의 창조에 관심을 두는 과정지향적 특징을 갖는다고 분석하며 교육의 본질을 탐색한 사례[조용환. 1997]가 대표적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교육과 가장 흔히 대비되는 개념 중 하나는 ‘훈련(training)’ 일 것이다. 교육철학자 Peters(1966)는 훈련이 제한된 범위의 사고방식이나 실천 기준에 맞게 사용되는 상황을 전제하여 특정 기술이나 능력을 습득시키는 것임에 반해, 교육은 더 포괄적인 신념 체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 둘은 구별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사 교육이 실현해야 할 일반적인 목적은 ‘훈련받은 교사(trained teacher)’가 아닌 ‘교육받은 교사(educated teacher)’를 양성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훈련의 속성으로 인해 교육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Robinson & Aronica(2015)는 교육과 훈련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대다수 학부모는 십대 자녀들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고 하면 만족스러워할 테지만, 성훈련을 받는다고 하면 꺼려할 것”이라고 소개하며, 교육은 체계적 학습 프로그램으로, 훈련은 특정한 기술의 습득에 초점을 맞춘 교육의 한 종류로 구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선행연구의 경우 조용환(2021)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그는 “강인한 단련이 필요한 경우에 때로는 훈련이 교육 장면에 섞여들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훈련이란 주로 스포츠, 무예 기술, 사무 등을 익히는 상황과 같이 일정한 목표와 성과를 겨냥하는 ‘닫힌’ 과정이므로, 열려 있고 열어가는 과정인 교육의 개념과 구분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교육과 훈련을 대비하는 접근을 정리하면, 전반적으로 교육은 자유로운 학습자를 중심에 두고 개인의 창조성을 장기적으로 증진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훈련은 권위 적인 교수자가 중심이 되어 특정 기준에 맞는 기능, 기술 등의 습득을 목표로 하는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이와 같은 교육과 훈련의 대비는 교육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있어 유용한 접근이 될 수 있으나, 간혹 비교 대상이 되는 훈련을 행동주의 심리학의 ‘조건화(conditioning) ’개념과 연결하여 그 교육적 가치를 폄하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Winch(1995)는 인간이 초기 도덕을 학습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학습을 훈련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교육자는 훈련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더 나은 교육’을 탐색하기 위해 ‘교육’과 ‘훈련’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이 둘에 대한 개념적인 고찰을 넘어 ‘교육’과 ‘훈련’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고는 내**가 과거 석사과정 재학 당시 전기분석화학 연구 과정에서 유리 탄소전극(glassy carbon electrode)의 연마(polishing) 경험을 회상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교육 맥락의 시사점 을 탐색하고자 한다.

** 본고는 개인의 경험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일반화한 결과가 아닌,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근거하여 해석한 과정임을 강조하는 질적 연구의 전통에 따라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본 론


1. 유리탄소전극 연마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해결


2012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한 나는 유리탄소전극 표면을 개질하여 전기분석화학 기법으로 원하는 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는 센서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전기분석화 학 분야의 연구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아주 기초적인 실험 과정부터 하나씩 익혀야 했는데, 그 중 첫 단계는 [그림 1] [Elgrishi, et al., 2018: Box 4]과 같이 실험에 사용할 전극을 갈아서 전극 표면 상태를 새것처럼 만드는 연마 작업이었다.



 























나는 십 수년간 연구실 선배들이 대대로 수행해 온 연마 절차를 직속 선배로부터 ‘교육’받았고 실험을 수행할 때마

다 ‘교육’ 받은 바에 따라 그 과정을 충실히 따라 전극을 준비했다. 당시 배운 연마 절차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연마 패드(polishing pad) 위에 0.3 μm 알루미나(alumina) 가루를 뿌리고 물에 잘 개어 현탁액(slurry) 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원통형 전극이 패드 표면과 수평을 유지하며 고르게 갈릴 수 있도록 8자 모양을 그리며 연마를 진행한다. 8자 모양을 100회 정도 그린 뒤에는 전극 표면에 묻은 알루미나 가루를 물로 씻어내고 0.05 μm 알루미나(alumina) 가루를 이용하여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연마 과정이 끝나면 전극을 에탄올, 물 등의 용매에 차례로 넣어 초음파세척을 각각 10분가량 진행하여 미세한 알루미나 가루를 제거한다. 처음에는 골고루 알루미나 현탁액을 만드는 것도, 전극이 수직을 유지한 채 8자를 빠르게 그리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으나, 실험을 거듭할수록 점차 연마 과정이 손에 익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극 표면에 별다른 불순물이 없고, 표면의 원자가 균일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은 전극을 사용하여 순환전압전류법(cyclic voltammetry; CV)으로 K3[Fe(CN)6]와 같은 물질이 산화-환원 반응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전류를 측정해 보는 것이다. 이때 산화 전류와 환원 전류가 각각 깔끔한 봉우리(peak)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CV 그래프가 [그림 2] [Elgrishi, et al., 2018: Graphical abstract] 와 같이 오리(duck) 모양으로 그려지면, 일차적으로 전극의 표면이 깨끗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신경을 써서 연마한 전극의 그래프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또렷한 오리 모양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며, 같은 종류의 전극이라도 CV 그래프 모양에 조금씩 편차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연마 숙련도 부족 때문이라 생각하고 연마를 할 때마다 선배들이 행해온 절차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없었는지, 어느 단계를 주의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1년 가량이 지나도 원하는 만큼 깔끔하고 일관된 CV 그래프 모양을 얻지 못했고, 비로소 나는 선배들이 가르쳐 준 연마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절차의 문제 점을 찾기 위해 알루미나 가루나 연마 패드의 제조 업체를 바꿔보기도 하고 초음파세척을 할 때 사용하는 용매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모색했다. 그러다가 CV 그래프 모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발견한 것이 ‘초음파세척 시간’이었다. 나는 기존과 같이 에탄올과 물에 각각 10분씩 초음파세척을 한 방법과, 아예 초음파세척을 생략한 방법,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유리탄소전극을 연마한 뒤 얻은 CV 그래프를 [그림 3]과 같이 비교하여 2013년 9월 14일 연구실 세미나 자리에서 보고했다.



[그림 3]에서 왼쪽과 비교하여 오른쪽 CV의 그래프는 산화, 환원 전류의 봉우리가 더 또렷할 뿐만 아니라 두 봉우리 사이의 간격도 줄어들었으며, 여러 전극의 CV 그래프 를 겹쳐서 그려도 거의 일치하게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극 연마 과정에서 초음파세척 단계를 생략함으로써 여러 유리탄소전극의 초기 상태를 더 안정적이고 균일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표면에 아무 처리를 하지 않은 전극 상태가 일관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전극 표면을 다양한 물질로 개질하더라도 더 균일한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기초적인 수준에서 안정화된 실험 결과 덕분에 이어지는 더 복잡한 현상과 실험 결과를 원활하게 해석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학술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제로 주요 유리탄소전극 제조 및 유통 업체에서는 연마 과정에서 전극이 과열되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초음파세척 시간을 5분 이내로 할 것을 권장한다든가(BASi, n.d.), 연마 과정에 초음파세척을 언급하지 않거나(ALS, n.d.), 심지어는 전극의 손상을 막기 위해 초음파세척을 하지 말라고 안내하기도 한다(CH Instruments, n.d.). 하지만 2023년 현재까지도 여러 전기화학 논문에서 유리탄소 전극의 연마를 위해 10분 이상 초음파세척을 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예: Hashemi, et al.; 2023; Uzun & Taban- ıl gil, 2023].



2. 유리탄소전극 연마 과정을 통해 본 ‘교육’과 ‘훈련’의 관계


내가 연구실 선배들로부터 ‘교육’받고 기존의 문헌자료로부터 배운 전통적 전극 연마 방법에 대해 다른 접근에도 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면, 가장 먼저 수많은 연마 ‘훈련’을 통해 그 기능에 대한 자기 신뢰를 형성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하지만 ‘훈련’이라고 다 똑같은 훈련이 아니다. 기존의 ‘모범(exemplar)’을 익히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학습자가 처음에는 기대 또는 생각하지 못했던 기술, 능력, 사고 등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으며, 이때 그들이 장기적으로 나름의 의미를 생성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게끔 돕는 과정을 우리는‘교육’이라 해석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만의 의미를 생성하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던 모범을 어느 정도 체화하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훈련’***이 인간의 자기실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교육철학자 Bollnow (1978)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 원문은 ‘훈련’ 대신 ‘연습(U ¨ bungU)’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연습과 훈련을 ‘개념적’차원에서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양자를 같은 것으로 보고(정창호, 2019), 본고에서는 ‘훈련’으로 통일함.


훈련에 전적으로 몰두하면 인간 자신 속에서—어느 정도는 외적 행동의 배후에서—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즉, 거기서 그는 마치 스스로의 힘에 의한 듯이 올바른 삶의 상태로 이행한다. 이 올바른 삶의 상태는 아마도 어떤 다른 방식으로는 달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Bollnow, 1978: 57f;.정창호, 2012: 114에서 재인용].


연구실의 ‘모범’으로 전수되어 온 전극 연마 방법은 일정 부분 그 한계가 드러났지만, 오랜 기간 성공적으로 전극 표면의 초기 상태를 깨끗하고 균일하게 만드는 실험의 첫 단계로 충실하게 역할하고 있었다. 전기분석화학 분야의 실험을 처음 도전한 나에게는 기존의 전극 연마 방법을 통해 얻은 전극의 CV 그래프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인 전극의 초기 상태로 인식됐다.

하지만 기존의 전통적인 전극 연마 방법에 점차 숙달되고 처음과 비교하여 점차 안정적인 CV 그래프를 얻어낼수록, 현재 수준 이상의 균일성과 이상적인 ‘오리 모양의 CV 그래프’를 얻기 위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즉 지속적인 전극 연마 훈련을 통해 나 스스로가 기존 방식을 충분히 체화했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현재보다 더 좋은 CV 그래프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발전은 역사적으로 과학이 진보해 온 동력으로서 Chang(2004)이 제안한 ‘인식적 반복(epistemic iteration)’ 개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인식적 반복은 우리가 처음에 기존의 지식 체계를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도 다 옳다고 굳게 믿지는 않은 채 그것을 채용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확증된 체계에 기초하면 서도 초기의 체계를 다듬거나 심지어 교정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탐구에 나선다. 과학에서 성공적인 발전 과정을 소급적용해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 교정의 과정이지 의심을 품을 수 없는 어떤 기초에 의거한 확신은 아니다[Chang, 2004: 32].


나의 전기분석화학 실험 경험에 따르면, 성공적인 ‘인식적 반복’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과학자 또는 학습자가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초기의 지식, 개념, 기 술 등과 관련된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초음파세척을 사용한 연구실의 전통적 전극 연마 방법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에 해당 방식으로 선배 연구자들은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론적으로 초음파세척은 전극 표면에 붙어 있는 미세한 입자를 제거하는 방법이므로 각 단계의 필요성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둘째, 과학자 또는 학습자가 초기의 체계를 활용할 때 일 어나는 세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이상적인 전극 연마 방법이 존재한다 해도 정말로 연마가 잘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더 나은 방향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인식적 반복’도 달성할 수 없다. 이는 인간과 주위 환경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물리적 세계를 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 스스로 의미를 생성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과학자 또는 학습자가 초기의 체계에 충분히 숙달되어야 한다. 현대의 교육관은 연습, 반복, 숙달과 같은 훈련의 양상을 행동주의 관점과 연결하여 그 가치를 평가절하해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인식적 반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훈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느 정도 존중할 만한 초기의 체계를 충분히 체화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기반해야만 초기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더 나은 방향을 탐색할 수 있다.



결 론


이번 고찰을 통해 내가 잠정적으로 정리한 ‘교육’과 ‘훈련’의 관계는 Winch(1995)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즉, “교육에는 훈련이 필요하다(Education Needs Training).”

비록 훈련이 일정한 목표와 성과를 겨냥하는 ‘닫힌’ 과정[조용환, 2021]이라 할지라도, 훈련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고 열린 과정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행위이다. 과학교육의 상황을 상정해 본다면, 과학 고유의 언어와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는 것, 물질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 특히 과학을 다른 학문과 차별화하는 ‘실험’의 측면에서 낯선 도구 사용법이나 연구 절차를 체화하는 것 모두 훈련의 과정이다. 훈련을 통해 구축한 기반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전까지는 할 수 없었던 것, 알 수 없었던 것을 조금씩 해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가 점차 다가오게 된다.

물론 교육에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해서 모든 훈련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교육과 훈련을 대비하여 교육의 본질을 탐색해 온 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또는 보다 중요한 접근은 교육과 훈련의 상생을 모색하는 것이며, 특히 성공적인 교육을 위한 훈련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Tatsuru(2005)는 우리가 운전학원 강사와 F1 드라이버 에게 각각 운전 강습을 받는 상황을 가정하며 교육의 본질적 속성을 논의한다. 그는 두 사람이 우리에게 자동차 운전이 라는 똑같은 기술을 가르쳤음에도 우리가 다른 것을 배운다는 점을 지적한다. 운전학원 강사에게는 ‘정량적인 기술’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평가받는 것에 반해, F1 드라이버에게는 ‘기술은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를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같은 기술을 익히더라도 ‘이걸 할 수 있으면 된거야’라는 것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학습자가 훈련을 통해 익히는 지식, 관점, 기술 그 너머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단계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재인식하는 과정은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교육’은 주로 강의실에 앉아 교수자가 준비한 강의자료를 읽으며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인식되며, ‘훈련’ 은 몸을 움직여 특정 기술과 동작을 체화시키는 형태로 인식되곤 한다. 즉 교육은 ‘정신’을, 훈련은 ‘육체’를 변화시키는 행위로 개념화된다.

이와 같은 교육/훈련의 이원적 개념은 정신/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해 온 오래된 통념에 기반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철학자 Plato는 세계를 이데아(eidos)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로 구분했는데,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으로만 인식 가능한 완전하고 불변하는 절대적 참의 세계로, 현상의 세계는 감각으로 지각되는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이데아의 그림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Plato의 이원론이 중세 기독교와 결합하게 되면서 육체는 소멸하여 사라지는 불완전한 것으로, 영혼은 영원불멸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시간이 지나 인간은 육체로 말미암은 원죄를 극복하고 영혼의 불멸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간 ‘고결한 정신’에서 비롯된 ‘비판적 사고’나 ‘과학적 추론’ 역량을 함양하는‘교육’을 강조해 온 과학 교과는 ‘불결한 육체’와 연결된 ‘기술’이나 ‘훈련’이라는 개념과 용어를 상대적으로 터부시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만약 정신/육체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존중할 가치가 있으나 절대적이지는 않은 전통적 모범을 체화하는 과정’으로 훈련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훈련의 진정한 교육적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교육 현장에서 홀대받는 신체에 관해 재고하는 다양한 시도를 기대하며,‘몸(body)’의 중요성을 강조한 Lakoff & Johnson[1999: 13]의 글로 본고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인지과학에서의 탐구는 철학에 심오한 함의를 갖는, 마음과 사고, 언어에 관해 흥미로운 새로운 것들 을 발견했다. … 가장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발견은, 먼저 인간의 의미와 개념화 사유 작용이 신체적 경험, 특히 감각운동 경험에 근거한다는 것이며, 둘째, 이성의 이러한 신체화된 양식 이 개념적 은유의 상상적 기제를 통해 추상적 사고에 이른다는 것이다. 마음과 사고에 관한 이러한 경험적 탐구에 관해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서구적인 철학적·종교적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마음과 언어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주된 철학적 가정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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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혁 Lee, Jong-Hyeok


•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학사(2006.3-2010.8.)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교육과(화학전공), 석사(2012.3-2014.8. 지도교수 : 홍훈기)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교육과(화학전공), 박사(2014.9-2020.8. 지도교수 : 홍훈기)

•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객원연구원(2020.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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