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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만큼 속력도 중요한 빈대 이야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유명한 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이 뒤따르는 격언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모두가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감명받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몇몇의 소위 ‘이과 감성’을 보유한 철저한 과학적 분석가들은 속도에는 방향이 포함되어 있으니 속력으로 수정함이 옳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처음 격언을 남긴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방향과 속력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당혹스러운 사회적 사건이 유명하다. 바로 갑작스러운 빈대의 출현이다.

 


빈대 박멸의 시대

 

당시를 정확히 살아간 세대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전후 로 빈대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뇌염이나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나 다양한 질병을 확산시키는 바퀴벌레와는 달리 빈대는 특별히 심각한 질병의 전파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흡혈을 통해 너무나도 고통 스러운 간지러움을 피부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남긴다.

빈대는 분명 인간의 입장에서 해충인 만큼, 빈대를 박멸하기 위한 시도는 몇 차례 있어왔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말라리아 모기를 비롯한 수많은 해충 퇴치의 선봉장에서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불명예로 퇴출당한 DDT의 시대였다. DDT의 살충 효과는 탁월했으며, 이에 대한 발견은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게 된 사실은 효율성 뒤에 가려져 있던 치명적인 부작용이었다. 유기염소 계열 살충제 였던 DDT는 환경과 누적되고 생물체 내 지방 조직에 점차 축적되어 문제를 일으켰다. 또 다른 유기염소 계열 살충제들의 개발, 유기인산 계열 살충제의 발명 등 사람들은 편리함과 이들을 위해 많은 위험을 낳고 시간이 흐르며 직면하는 것을 반복해 왔다.

모기나 빈대, 이, 바퀴벌레 등 인간의 입장에서 여러 해 충들을 박멸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드넓은 지구 환경에서의 완전한 제거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오히려 내성의 형성이나 적응 진화라는 방식으로 해충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최근 빈대의 출몰이 국내 여기저기서 요란 하게 터져나오고 있지만, 사실 빈대는 박멸된 적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우리의 안전을 위한 대응에는 새로운 고민들이 필요한 순간이다.



빈대에 대항하기

 

모든 투쟁은 적에 대해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빈대가 사람을 무는 작은 생물이며, 간지러움과 불편함을 일으킨다는 것 외에도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빈대의 냄새는 꼭 빈대가 아니어도 대략적이나마 체감해 볼 수 있다. 바로 국내에서도 선호도가 크게 갈리는 향신료 중 하나인 고수다. 고수를 의미하는 단어인 coriander는 어원에서부터 빈대와 연관을 갖는다. 그리스어로 빈대를 의미하는 koris와 냄새라는 뜻의 andros가 결합해 형성된 단어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빈대 냄새와 고수 향이 같다고 여겨져 온 셈이다.

유기염소 계열 살충제가 빈대에게 효과적이었다고 하나, 위험성이 확인된 화학 물질을 다시금 꺼내들어 살포할 수 는 없는 일이다. 최근 빈대 이야기가 다시 나오게 된 것은, 이전까지의 살충 방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살충제라는 단어로부터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은 모기향이나 모기약과 같은 일상적인 제품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피레트로이드(pyrethroid)라는 분자 계열의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피레스로이드는 나름 안전한 유래를 두고 있다. 바로, 살충 능력을 갖는 식물인 국화다. 국화에 함유된 천연 성분이 피레트린(pyrethrin)이며, 화학적으로 분석된 구조를 바탕 으로 합성된 물질들이 피레트로이드이다. 피레트로이드 계열 살충제는 꾸준히 사용되어온 만큼 빈대가 내성을 갖게 된 것으로 추측되며, 국가에서는 다른 종류의 살충제 사용을 승인하게 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라는 계열이다.

니코틴(nicotine)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듯 네오니코티노 이드는 담배류 식물에서 흔히 관찰되는 니코틴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곤충의 신경계를 지속적으로 자극시켜 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생명체에게서 가장 중요한 회로를 과열시켜 태워버리는 것과 같으며, 앞서 살펴본 피레트로이드와는 작용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에 현재까지 만들어진 내성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네오니코티 노이드 살충제를 장기간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해결책을 보지 못한다면, 해충들은 다시 한번 적응하고 진화해 더욱 끈 질긴 적이 될 것 임에 틀림없다.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막다른 길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과학인가 미신인가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한 살충제의 적용은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그 외에도 일상적으로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일종의 민간요법도 전해오기 마련이다. 비록 언론에서 는 속설에 의존한 방역을 시도하지 말고 승인된 살충제를 활용하라 안내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아무런 근거 없이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일지, 혹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지만 단지 우리가 잘못 시도하고 있을 것일지. 과학일지 미신일지 말이다.

 번째로 규조토나 베이킹소다, 드라이시트 등 건조제 를 이용해 빈대를 박멸할 수 있다는 설이다. 단순한 건조가 빈대 제거에 효과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설 중 가장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살충제보다도 더욱 확실한 방식이다. 건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헌에서 빈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건조제는 밀랍 성분으로 이루어진 빈대의 외부 코팅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부 코팅 없이는 서서히 탈수되어 죽게 된다. 특히, 살충제와 같은 화학적 방식이 아닌, 체내 수분 고갈이라는 물리적 작용이기 때문에 저항성을 가질 수 없는 확실한 퇴치법이다. 단지 우리에게는 방향은 옳지만 속력이 충분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건조한 방 안 환경보다는 확실한 건조제가 필요하다. 식품 보존에 사용되는 실리칼겔 알갱이나 규조토 가루를 방 한구석에 놓아두는 정도로는 어렵다.



 번째로 방의 온도를 높여 살충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생물이든 적정 온도 이상의 고온에 노출되면 살아갈 수 없 다. 빈대 역시 방 온도를 높이면 사멸할 수 있다. 하지만 단 순히 온도만 높여서는 하루이틀 사이에 빈대가 사라지지 않는다 먹이가 없는 상황에서 온도를 높이고, 건조제를 이용해 건조한 환경을 만들었으며, 빈대 제거를 도와줄 특정한 곰팡이 등에 노출된 경우에나 며칠 내에 빈대 제거가 가능해진다. 이번에도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우리에겐 속력이 부족했다.

가장 극적인 당혹스러움은 피톤치드 용액을 이용한 살충에 있다. 흔히 식물 추출물 용액을 일상적으로 피톤치드라 부르곤 하는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시도했던 피톤치드들은 효과가 없었을 것도 당연하다. 빈대 퇴치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어 등록된 식물 유래 생화학 살충제는 단 한 종류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생장하는 열대 상록수인 님(neem) 나무의 씨앗과 잎 을 압착해 얻어지는 오일이다. 님 오일에는 아자디라크틴 (azadirachtin)이라는 분자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아자디 라크틴은 곤충 성장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어 활동을 억제하며, 생식 기능을 방해해 불임 상태로 만들고, 곤충 후각을 교란시켜 식욕마저 없앤다. 이를 섭취하면 도파민 신경 세포를 조절해 무언가 먹었을 때 매우 혐오스러운 맛 기억으로 변환시켜 거식을 통해 자가 사멸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모든 피톤치드의 효과가 아닌 님 오일 성분만이 가능한 방식인 만큼, 이번에는 속력은 충분했더라도 방향이 잘못 되었던 것과 같다.

빈대의 급격한 출몰은 분명 놀랍고 불유쾌한 사태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빈대가 위험한 전염병을 옮기거나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충이나 전염병, 바이러스, 환경 문제 등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당황하지 않고 올 바른 선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적 방식을 기반 삼아 올바른 방향을 향해 충분한 속력으로 나아 갈 수 있어야만 한다.





장 홍 제 Hongje Jang


• KAIST 화학과, 학사(2004.3-2008.2)

• KAIST 화학과, 박사(2008.3-2013.8, 지도교수 : 한상우)

• 서울대학교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2013.9-2015.1, 지도교수 : 민달희)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stry and Biochemistry 박사 후 연구원(2015.1-2016.1, 지도교수 : Mostafa A. El-Sayed)

• 광운대학교 화학과 부교수(2016.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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